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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커피 이야기

커피의 기원과 전파

by 디더블유 2023.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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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커피 한 잔이 주는 편안함과 활력은 책상에 앉아 업무를 시작할 때나 휴식이 필요할 때마다 커피와 함께하는 버릇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요즘 집에서나 사무실에서나 직접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커피로 내려 마시거나 가끔은 비알레티 모카포트로 끓인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의 소소한 즐거움과 맛을 음미하고 있는 커피의 기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커피벨트

하루 25억 잔이 소비되고 세계에서 석유 다음으로 교역량이 많은 품목인 커피
커피의 역사는 세계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한편 추위에 약한 커피나무는 열대와 아열대 지역 국가의 커피농원에서 재배되며,
적도를 중심으로 북회귀선과 남회귀선 사이에서 커피가 잘 자랍니다.
이 지역을 커피 벨트라고 합니다. 

출처 : https://www.waveneyvalleycoffee.co.uk/the-bean-belt

 

커피는 처음 염소가 먹었다?

커피 발견에 대해 내려오는 유명한 전설 중 '칼디의 전설'이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염소 치기인 칼디(kaldi)라는 목동이 어느 날 염소들이 빨간 열매를 먹고 흥분해서 날뛰는 것을 목격하고 직접 그 열매를 따먹어보니 정신이 맑아지고 흥분이 되는 것을 느껴 이슬람사원수도사들에게 알렸습니다.

출처 : 칼디와 춤추는 염소들, 프랑스 근대 화가의 작품

 
수도원에서 이 열매를 달여 마시니 야간 기도 중에 쏟아지는 잠을 보다 쉽게 이겨 낼 수 있게 되면서 이후 성지순례를 떠나는 수도자들에 의해 에티오피아에서 주변국가로 점차 커피가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커피의 전파

커피에 관한 정확한 기록이나 문헌이 남아있지 않지만, 최초로 커피가 발견된 에티오피아가 홍해 건너 이웃국가인 예멘을 침공할 때 전쟁에 참전했던 흑인 노예들이 비상식량으로 커피를 지니고 건너가 그쪽 지방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간 것이 최초의 커피 전파 경로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예멘의 모카 항을 통해서 그 당시 최강국인 오스만트루크 제국(지금의 튀르키예)으로 수출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슬람제국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고 독점되어 오다가 인도판 문익점인 인도출신 이슬람 승려 바바 부단(Baba Budan)이 1600년경 성지 순례를 갔다가 배꼽 주변에 커피씨를 배꼽부위에 숨기고 마치 복대를 하듯이 배를 천으로 감싸고 몰래 반출해 인도 남부의 마이소르 지역 산에 심어 재배에 성공하여 인도에서 재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616년 당시 최고의 해양강자 네덜란드는 예맨의 주요 무역 항구인 모카(Mocha) 항구에서 네덜란드 상인이 커피 묘목을 밀반출하여 암스테르담 식물원에 이식하여 재배에 성공하였으며 1696년 당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의 자바(Java) 섬에 이식하게 됩니다.

십자군 원정에 의해 유럽에 소개되기 시작한 커피는 처음에는 이교도의 음료라 하여 배척을 받지만 1615년부터는 베니스상인들에 의해 유럽에 본격적으로 커피가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은 커피를 다양한 방법으로 즐기면서 오늘날 카페 문화의 시작을 알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카페오레 등 커피를 새롭고 신선하게 즐기는 방법이 유럽에서 생겨나면서 유행하기 시작하였고 당시에는 고가였던 설탕을 첨가하면서 커피의 풍미를 살린 것도 프랑스 루이 16세 때 일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커피 재배의 확산도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포르투갈 등 유럽 강대국을 중심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식민지 국가로 재배를 시작하게 되면서 커피 재배도 크게 확산하게 되었습니다.

네덜란드1718년 수리남에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하였고, 1714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장과 당시의 프랑스 왕인 루이 14세의 조약에 의해 커피나무 한 그루가 전해지고 파리의 식물원에서 자라게 되어

1720년 프랑스령 카리브해의 마르티니크섬에 재배를 시작으로 1723년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들여온 커피를 1727년 브라질, 파라 지역에서 재배를 시도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1730년 영국은 자메이카에 커피 재배를 시작하였습니다. 1750~1760년 과테말라에 커피나무가 전파되었고.

1752년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브라질 파라에서 왕성한 커피 재배가 시작되었으며, 1790년에 멕시코에서도 커피 재배가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으로 온 커피

 한국에서의 커피는 1895년 을미사변시 고종 황제러시아의 공사관에 피신해 있을 때 커피를 처음 접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많으나 미국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이 1885년에 펴낸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on : The Land of the Moring Clam)' 180쪽에 커피를 마신 당일의 상세한 내용을 적었는데, 1884년 1월 한강변에서 커피를 접대받은 사연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종에게 자주 커피를 대접했던 독일국적의 여인 손탁이 1902년 건립된 정동 손탁호텔 내부에 설치한 '정동구락부'라는 레스토랑이 한국 최초의 커피하우스라고도 알려져 있으나 독립신문 1899년  8월 31일 자에 "윤용주가 홍릉 전차정거장 앞에서 다과점을 개업하고 커피와 차, 코코아를 판매한다"는 광고가 실렸다고 합니다. 

여기서 또하나의 역사적 의의는 당시 손탁호텔의 정동구락부는 일본에 대한 조선인의 저항 의식이 싹트고, 애국계몽 인사들이 외교관, 선교사와 연대해 항일운동을 시작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정동구락부라는 단체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발생하자 일본을 규탄하는 한국 최초의 배일(排日) 정치단체로 정동구락부는 일본에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905년 조선통감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손탁호텔에 묵으면서 일본이 조선의 대신들을 불러 회유하고 협박하는 장소로 전략하였습니다. 결국 손탁은 1909년 9월 일본의 압박에 의해 손탁호텔을 프랑스인 보헤르에게 매각하고 한국을 떠나게 됩니다.

1910년 8월 한일합병조약으로 국권을 상실한 조선엔 암흑의 시대가 드리워지고 커피에 대한 기록도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후 1919년 3·1운동에 놀란 일본이 문화통치로 전략을 바꾸면서, 유학을 다녀온 조선의 '모던 보이'를 중심으로 명동과 충무로, 종로 등지에 커피하우스 개업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후 8.15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미군이 한국 주둔 시 군용 식품으로 가져온 인스턴트커피를 시작으로 1980년대 믹스커피와 커피 자판기가 개발되면서 대중화가 시작되었습니다.

1902년 세워진 손탁호텔, 출처 : https://shindonga.donga.com/Print?cid=769772 [사진제공 : 왈츠와닥터만커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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